강화산 - 소네트
1990년부터 대전제인 ‘우연의 지배Incidental Dominion in Life’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우연의 지배란 우리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우리의 일을 역사(役事)하는 어떤 힘이 우연처럼 작용하여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김영재 평문 중)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으로 어떤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 우리들의 삶의 방향이나 결과를 지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좀더 서술하면, 생명의 탄생은 극도의 우연성을 가지며 그것은 필연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을 더더욱 강하게 드러내기 위한 주제이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찾아낸 명제이기도 하다.
1989년 첫 개인전을 ‘레퀴엠’이라는 주제로 가졌는데 이때는 구상 작품으로 시대적 아픔을 정리하고 새로운 형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제의(祭儀)적인 전시회였다. 그리고 1990년에 일이년간 최소한 한 번은 개인전을 열겠다는 다짐을 하고 지금까지 ‘우연의 지배’를 주제로 전시를 갖고 있다. 각 전시는 ‘고기잡이를 위한 씻김’, ‘폐사지에서’, ‘마음으로 세우는 탑’, ‘고요와 울림’, ‘선물’, ‘소네트’ 등을 부제로 삼았다.
2016년까지는 매우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주의적 작품이 주였다면, 이후 2017년 ‘선물’ 작품에서부터는 표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개념적이고 미니멀적인 화면을 추구해 오다 2020년 초부터 기하학적인 선에 의한 추상으로 변모하였다. 2월 초 미국 LA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는 나에게 온종일 그림에 집중하며 깊은 탐구와 사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는 붓에 의한 그리기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몇 달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나 자신을 세상과 완전히 단절시키는 생활을 하면서 화폭을 대면하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 안에서 창작 활동을 하면서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성적 표현과 이성적 표현은 결국 같은 선상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연과 필연이 하나인 것처럼….
많은 화가들이 장르와 표현 방법을 떠나 작품에 담으려는 정신적인 내용은 생명, 사랑, 사람, 자연, 환경, 마음 등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의 상징들이다. 그러면서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갈구한다. 이러한 화두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소네트’ 그림은 2016년 어느 날 셰익스피어에 흠뻑 빠진 친구 이종태로부터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으로 ‘셰익스피어 소네트’라는 주제로 전시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들으면서 시작되었다. 소네트(sonnet)는 유럽 정형시의 한 가지로 단어 자체의 의미는 ‘작은 노래’라는 뜻이다. 13세기 이탈리아 민요에서 파생된 것으로 엄격한 형태와 특정 구조를 갖춘 14줄로 구성된 시를 의미한다. 엄격히 각 운이 맞추어지는 형식이지만 소네트의 형식과 규율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소네트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작품으로, 그는 154개의 소네트를 남겼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읽으면서 많은 감동과 함께 오래 전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의 장시 ‘젊은 파르크’에 매료되어 그 의미도 모른 채 연작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그 첫 구절은 이랬다. “누가 우는가, 거기서, 한 가닥 바람이려니, 이 시간 홀로, 하늘 끝 금강석처럼 빛나는 이 깊은 밤?…헌데 거기 누가 우는가, 이토록 내 가까이서, 내가 울 이 순간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생각난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
셰익스피어 소네트 43 ‘모든 밤은 낮이다’를 읊어본다.
“온종일 가치 없는 것들을 보던 내 두 눈은
눈을 감고서야 가장 잘 보기 시작한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내 눈은 당신을 찾아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 곧바로 당신을 비추는구나.
꿈 속 환영만으로도 어둠을 빛나게 하는 당신
감은 두 눈에도 당신의 모습 그토록 빛나는데
맑은 날 더 밝은 빛 아래에서는
당신의 모습 얼마나 더 황홀하겠는가.
죽어있는 밤 깊은 잠에 빠진 보이지 않는 두 눈에도
당신의 아름답고 안개 같은 환영 보이는데
생동하는 낮 당신을 보게 되면
내 두 눈은 얼마나 영광스럽겠는가.
모든 낮은 밤이다, 당신을 보기 전까지는
모든 밤은 낮이다, 꿈이 당신을 비춰주면”
발레리의 고독과 욕망, 릴케의 인생, 셰익스피어의 사랑을 화폭에 담으려는 생각들이 가끔은 광야와 같이 느껴진다. “광야는 빈 들이다. 고난과 고통과 고독의 장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출발했고, 그들에게 광야는 단순히 고난과 고통과 고독의 자리만이 아니다. 광야는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는 곳이다. 또 구원의 말씀이 임하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광야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감사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다.”(출처; 기독신문 http://www.kidok.com)
폴 발레리의 말로 끝맺음한다.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2020. 7.
그림창고에서 강화산
Hwasaan Kang - Sonnet
Since 1990, I been working on the major premise of 'Incidental Dominion in Life' as the theme of my works. 'Incidental Dominion in Life' means that “some force that works in our affairs acts like a coincidence in unexpected places and may bring about an outcome that is beyond our reach” (from a critique by Kim Young-jae). Conversely, it also means that something inevitably takes place and governs the direction or outcome of our lives. To elaborate, the birth of life is extremely coincidental. It is a theme bound to reveal ever so strongly that inevitability is at its foundation, and it is a proposition found in the question of 'Who am I?'
In 1989, I had my first solo exhibition in the theme of 'Requiem.' The exhibition was a ritualistic event for me to address the pain of the times through figurative works and move on to a mode of expression. In 1990, I promised myself to hold a private exhibition at least once in a year or two and have been doing so with the theme of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ach exhibition had a subtitle, such as ‘Cleansing for fishing’, ‘At a ruined temple’, ‘Building a pagoda with heart’, ‘Silence and echo’, ‘Gifts’, and ‘Sonnet’.
Until 2016, my works were extremely spontaneous and emotional like those of expressionism. Then, from 2017 with the works on ‘Gifts’, I started to create works that are expressive and conceptual and minimal at the same time. Beginning from 2020, my works have changed to abstract images created with geometric lines. The Covid-19 epidemic, which erupted shortly after I returned home from a gallery tour in Los Angeles in early February, gave me the opportunity to focus on my painting all day and have a time of deep exploration and contemplation. This period of intense research and reflection liberated me from painting with brush. Although it was only for a few months, I was able to feel the true freedom of facing the canvas while living a life that is
The contents that many artists like myself want to include in their works, regardless of genre and expression, are symbols of abstract words such as life, love, people, nature, environment, and mind. In the meantime, we seek communion with nature through our work. This quest has remained the same before or now and will continue in the future, because human beings are lonely.
The 'Sonnet' paintings presented in this exhibition was conceived one day in 2016 when my friend Lee Jong-tae suggested to me to have an exhibition on ‘Shakespeare’s sonnet’ to commemorate the 400th anniversary of his death. Sonnet is a poetic form from Europe. The word itself means ‘little song.’ Derived from Italian folk songs in the 13th century, sonnet refers to a poem of fourteen lines that follows a strict form and specific structure. Following the strict rhyme scheme for each line is important in writing a sonnet, and yet the conventions for this form have changed over time. The most well-known sonnets are those by Shakespeare, who left 154 pieces.
I was deeply moved by Shakespeare’s sonnets, which led to read the works by French poet Paul Valéry. It was a long time ago, but I remember how I was fascinated by his long poem, La Jeune Parque, and painted a series of work without fully appreciating its meaning. The first lines go like this:
Who cries there, if not the simple wind, at this hour
Alone, in this deep night shining like the end? .. But who is there crying,
So close to me, at this moment I cry?
I also recall Rainer Maria Rilke's Letters to a Young Poet.
Be patient towards all that is unsolved in your heart and try to love the questions themselves. Live the questions now. Perhaps you will find them gradually, without noticing it, live along some distant day into the answer.
Let me share with you one of my favorite Shakespeare sonnets, Sonnet 43 All days are night.
When most I wink, then do mine eyes best see,
For all the day they view things unrespected;
But when I sleep, in dreams they look on thee,
And darkly bright, are bright in dark directed.
Then thou, whose shadow shadows doth make bright,
How would thy shadow's form happy show
To the clear day with thy much clearer light,
When to unseeing eyes thy shade shines so!
How would, I say, mine eyes be blessed made
By looking on thee in the living day,
When in dead night thy fair imperfect shade
Through heavy sleep on sightless eyes doth stay!
All days are nights to see till I see thee,
And nights bright days when dreams do show thee me.
The idea of transferring Valéry’s solitude and longing, Maria Rilke's life and Shakespeare’s love on my canvas sometimes made me feel as if standing in the wilderness. The wilderness is an empty plain. It is a place of suffering, agony, and solitude. The Israelites began by listening to the Word of God in the wilderness, and for them the wilderness is not just a place of suffering, agony, and solitude. The wilderness is a place to meet God. It is where God's compassion and mercy are present. It is also where the Word of salvation is present. Therefore, we can thank and praise God even as we walk through the wilderness.” (Source: Christian Newspaper http://www.kidok.com)
Lastly, I end this note with a quote that is attributed to Paul Valéry. “Take courage and live as you think. If not, sooner or later you end up thinking as you have lived.”
2020. 7.
From my studio (Painting Warehouse)
Hwasaan 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