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중심에선 사찰 송광사
-마음으로 세우는 탑-
글/ 강 구 원(화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자락에 위치한 송광사
(Songgwang-sa)는 들어가는 초입부터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 잘 포장되어 예쁘게 단장한 길가에 분재처럼 생긴 벚나무 가로수가 1㎞이상 늘어선 모습은 이곳 송광사의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주차장을 지나 매표소부터는 포장되지 않은 길로 개울을 따라 약 10여분 걸어가면 전각들이 하나 둘씩 보이는데, 이길 또한 하늘과 숲이 어우러진 마음 씻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사찰은 대부분 일주문(Iljoo gate)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있다. 일주문이란 좌우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실은 모든 진리는 한 마음으로 나타나고 한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불교의 진리를 뜻한다. 일주문의 모양은 기둥위의 구조물이 훨씬 크기 때문에 처음 보면 지붕이 쏟아 내릴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데 아마도 쏟아 내리는 마음처럼 세속의 번뇌를 버리라는 의미도 포함하리라....... 일주문 앞까지는 세속의 땅이다. 그러나 일단 일주문을 들어서면 세속을 떠난 곳으로 진리의 공간이다. 이 진리의 공간은 나뉜 곳이 아닌 한마음의 공간이다.
두 해전 고향 가는 길에 송광사에 들린 후 이번이 세 번째이다. 마침 저녁 예불시간이어서 전부터 꼭 접하고 싶었던 송광사 예불의 모습을 직접 대하니 참으로 그 웅대함과 황홀함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 귀한 시간 이었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 촬영하려는 마음마저 잃어버렸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이러한 감동의 기억을 갖고 걸어가는데 전에 없던 황토길(옛길을 복원함)이 왼편으로 새롭게 생겨 마침 지나는 스님께 물었더니 상냥하게 그길로 가도 절이 나온다고 해 돌아오며 이용하려 남겨 두었다. 한 5분 걸었을까? 멀리 긴 장삼을 걸친 스님 두 분이 도포자락을 날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새로워 카메라 파인더에 눈을 붙였다. 그 순간 “사진 찍지 마세요” 하는 소리가 메아리와 함께 나의 귓전을 때렸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멍하니 스님들이 지날 때 까지 서 있었다. 미안하단 말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길을 걷는 스님의 모습을 본지가 얼마만인가! 그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는데.......
어느새 절 입구에 다다라 일주문을 통해 들어갈까 망설이다 구산선문(九山禪門)이 눈길을 잡아 그곳부터 들렀다. 한 칸으로 만든 누각 중앙에 아름 들이 통나무로 중심기둥을 새우고 밑 부분을 쪼그리고 들어갈 수 있게 홈을 파 놓은 것이 아마도 낮춤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곳이리라. 선문을 통해 들어서니 구산스님의 사리탑인 적광탑(寂光塔)과 비(碑), 탑전인 적광전과 요사채인 무상각(無常覺)이 하나의 틀로 잘 가꾸어져 있다. 적광탑의 원형과 사각의 조형성이 땅을 지배하듯 서있으나 오히려 그런 웅위함이 인생의 무상함을 더한다.
무무문(無無門)과 효봉스님의 탑비(塔碑 a stupa and a monument)를 보고 승보전(sangha-jewel hall)에 들어섰다. 승보전은 송광사가 승보종찰로서의 상징적인 건물로 다포(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꾸며 놓는 집)의 아름다움과 중앙의 승보전이란 현판 좌우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튀어 오를 듯 머리를 내민 목조각은 화려한 보색대비의 단청과 함께 우리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무무문(無無門)은 불교에서의 무자가 의미하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이요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라는 의미를 겹쳐 사용하여 매우 긍정적인 무자의 의미를 강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효봉스님은 법학을 공부한 후 10여년을 법관으로 일하다 최초로 내린 사형선고 앞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뇌와 고통으로 유랑하다 늦은 나이에 출가하여 쉬지 않고 좌선에만 전념하신 분이다. 그의 나이 마흔셋에 깨닫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어도 토굴 밖으로 나오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토굴에든지 1년 반 만에 깨달음에 이른 것이다. 1966년 가을
“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일천강에 비치리”
라는 열반송을 남기시고 일흔아홉의 세수로 입멸(entering Nirvana)하신 분이다.
우화각(羽化閣 Woohwagak)에 걸터앉아 종고루(Jonggoroo)를 바라본다. 개울물 찬바람이 머리를 스친다. 2년 전 저녁예불의 감동이 가슴에 닿는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공연을 앞둔 무대처럼 정연하면서도, 땅과 하늘과 바다의 소리를 조용히 품어 올리고, 송광을 안은 조계산 풍경이 홍교아래 떨어진다. “우화”라는 말은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하늘로 떠올라 신선이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즉 부처님의 이상세계로 가자는 의미이다. 그래서 반달처럼 돌로 쌓아 만든 무지개다리(홍교)위에 세워진 우화각을 지나며 경내로 들어서는 송광사의 가람은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보아 넘길 것이 없다.
길 재촉하는 태양에 못 이겨, 노곤한 다리 끌고 일주문을 지나는데 불일서점(Bulil Book store)이 눈에 든다.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불교용품과 책들이 정갈하게 놓인 그곳이 마음을 끌었다. 서가를 둘러보는데 “귤 하나 드시겠어요” 하는 목소리에 피곤함이 사라진다. 불교서적에 대한 정보도 없고 해서 권할만한 책을 부탁했다. 요즈음 보고 있는 “마음공부”라는 책이 자신에게는 가장 좋다고 하면서 세권의 책을 내 놓는다. 그리고는 다 사지 않길 바란다며 미소 짖는다. 이유를 물었더니 마음에 부담이 온다는 것이다. 마음공부.......!
송광사의 탑은 스님, 보살, 중생들이며 그들의 마음이 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으로 세우는 탑! 이 탑이야 말로 영원히 쓰러지지 않는 불멸의 탑이다. 나는 탑 없는 송광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리의 탑을 본 것이다.
불교에서는 귀하고 값진 보배를 세가지 들고 있는데 이는 부처님, 가르침, 승가 이다. 사실 불교는 이 삼보를 통해서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부처님에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 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이세가지 보배를 가르키는 삼대 사찰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불보사찰), 대장경 경판이 모셔진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그리고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는 순천 송광사(승보사찰)이다. 송광사가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다는 것은 고려때 보조국사 지눌이 당시 타락한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는데 그 본 도량이 바로 송광사이기 때문이다. 지눌스님을 뒤이어 열다섯 명의 국사들이 배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기에 송광사를 승보종찰이라 한다.
사찰의 중심전각 즉 가람의 중심에선 전당은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이다. 송광사는 대웅보전(main Buddha hall)이 중심에선 큰 법당으로서 정면 7칸 측면5칸의 아(亞)자 모양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지붕의 독특함은 우리 건축의 우아하고, 세련된 곡선의 아름다움을 겹겹이 세워 기하학적 아름다움까지 더하고 있다. 가람은 대웅보전(Main Buddha Hall)을 중심으로 승보전(Sangha-Jewel Hall), 지장전(Jijangjeon), 약사전(Yaksajeon), 영산전(Yeongsanjeon), 관음전(Hall of the Avalonitesvara), 설법전(Teaching Hall), 수선사(Practice Hall), 우화각(Woohwagak), 임경당(Imgyeongdang), 사자루(Sajaroo), 등 50여 전각들이 빼곡히 들어선 하나의 마을처럼 보인다. 때론 흩어지듯 감싼 전각들과 크고 작음, 요사채의 모습들이 캔바스위에 표현된 현대 추상화처럼 느껴진다. 특이한 것은 탑이 조성되지 않은 점이다. 대부분의 사찰은 탑을 중심으로 가람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 송광사는 탑이 없다. 궁금하여 보살께 물었더니 이곳의 터가 연꽃분지 모양이라 탑을 조성하면 가라앉는다 하여 탑을 앉히지 않았다한다. 이해되긴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이 거대한 사찰에 탑을 조성하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가 풍수지리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곳이 불교 삼보중 승가의 종찰이며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는 곳이라면 그 해답은 승가에 있다 하겠다. 승가라 함은 스님과 신도 즉 중생을 뜻하는 것으로 진리의 길을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이에 속한다. 참 진리는 삼보에 있고 삼보는 참 마음에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부처요 진리이며 승가일 것이다. 때문에 송광사는 탑을 세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의 탑을 앉혔으며 그것도 단탑이나 쌍탑형의 가람형식이 아닌 다탑형의 가람형식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